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존 레논 (문단 편집) === 원인 분석 === 존 레논은 [[오노 요코]]와 만남을 가지고, 정신적 성숙을 거치면서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평화와 사랑을 외치는 삶을 살았다. 실제로 야스쿠니 신사 방문을 제외한 모든 논란이 요코를 만나기 전에 생긴 것이며, 이후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노래를 많이 발표했다. 이 시절, 그는 원초적 외침이라고 불리는 심리 치료를 통해 평생의 트라우마였던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 대한 기억을 치유하기 시작한다. [[Plastic Ono Band]] 전반에 그런 치유의 과정이 나타나며, 이후 그가 정신적으로 안정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존은 외도를 멈추지 않았고 결과적으로는 두 번째 결혼도 그다지 평탄하지는 않았다. 따지고 보자면 존과 오노의 관계는 오픈 릴레이션쉽(Open-relationship)에 가까웠으며, 일반적 시선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고, 당사자들의 생각과 다르게 왜곡되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존과 메이 팡의 관계. 그의 사생활을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존의 이러한 행동들은 자신과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 및 질투심에서 비롯된 소유욕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한다. 존이 [[폴 매카트니|폴]]을 밴드에 받아들인 것도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취향이면서도 기타 연주를 자신보다 잘 하기 때문이었고, [[신시아 레논|신시아]]에게 관심을 가진 것도 중산층 출신에 자신과는 다른 얌전한 무리들과 어울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시아와 속도위반으로 결혼한 존은 결혼생활 도중 그녀에게 죄책감과 더불어 상당히 복잡한 감정을 가졌었던 듯 한데, '자신이 신시아에게 아이라는 족쇄를 채워두었다'는 식으로 표현했었다고 한다. [[비틀즈]] 활동 당시에도 존과 폴은 작곡 파트너쉽으로도 유명했으나, 밴드 내부에서는 둘 사이에 크고 작은 갈등들이 많았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부정적 평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존 레논이 여전히 위대한 음악가로 평가받는 이유는 결국 그가 예술가적 재능을 발휘하는 것을 넘어 불안정한 내면을 치유하고 성숙을 이루는 과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솔로 커리어에서 이런 면이 돋보이며, '비틀즈의 아이돌'에서 '고독한 뮤지션'으로 이미지를 탈바꿈하였다. 주변 인물들과 과거의 나쁜 기억을 풀기 시작하고, 한 가정의 아버지로 자리를 잡은 것도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폴과 화해하고, 줄리안과 다시 만나기 시작하면서, 또한 두 번째 아들 션에게는 제대로 아버지의 역할을 다하면서 그의 천재적 재능의 이면에 늘 부족했던 일반적인 행복도 어느정도 충족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일반적인 부성애와 행복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둘째 아들인 션 레논에게만 해당한 것으로 상술했듯이 전처 소생인 줄리안 레논에 대해서는 죽을 때까지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신시아와의 결혼 생활 중에는, 비틀즈의 바쁜 스케줄 탓도 있었겠으나, 아들 줄리안 레논을 방임했다. 훗날 회고하길[* 아버지인 알프레드 레논에게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당시엔 아들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랐었다는 식으로 자조하였다. 신시아와의 이혼 후에는 자신이 저지른 행위를 어느 정도 후회하고, 줄리안과 다시 만나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했지만, 존이 줄리안과 제대로 된 부자간의 교류를 나눴던 시기는 오노 요코를 두고 메이팡과 외도를 하던 그 짧은 기간 동안이었다. 하지만 이후 요코와 재결합하면서 다시 아들에게 소홀해졌다. 결국 줄리안은 유년기 시절을 아버지의 부재로 외롭게 보내야 했고, 어린 줄리안에게 아버지 자리의 공백을 대물림해줄 수 없다는 이유로 그를 성심성의껏 챙겨준 사람이 바로 폴 매카트니였다.[* Hey Jude가 줄리안 레논을 위로해주려 만든 곡이라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리고 초창기엔 폴 매카트니가 존 레논에게 줄리안에 대해 잘 챙겨주라는 식으로 언급해보기도 하였으나 '자신의 아들이니 넌 관심 끄라'는 식으로 응수했다고 한다.] 다만, 줄리안은 아버지인 존에 대해 상당히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마냥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1971년부터 1980년, 줄리안이 불과 17세였을 때 존 레논은 사망했고, 이 시기 레논이 거주했던 미국을 방문했던 줄리안은 아버지를 “매력적이고, 재미있고,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